교회의 어제와 오늘
 


1970년을 맞으며 한국은 산업화의 물결로 경제가 크게 활성화되고, 한국 선교 85년을 맞는 당시 한국은 교회가 크게 부흥하고 성장을 향한 발판을 든든히 서 가는 때였다. 한편으로는 갑작스런 교회성장으로 많은 교파가 형성되었고 국가적으로는 정치적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 때였다.
천안갈릴리교회의 시작을 보아도 이 때의 상황에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당시 산업화의 현상으로 형성된 공장지대와 모든 사람들로부터 소외 된 계층이 모여 사는 천안역 뒤쪽 봉명동에 자리 잡게 된 천안갈릴리교회다. 그 후 25년이 지난 오늘의 천안갈릴리교회는 50만 천안시의 신·구 도시를 잇는 쌍용동의 땅 2,500평(사용면적은 4,000)평의 대지에 연건평 1,200평의 우뚝 솟아 있는 성전을 건축하고 이전하므로 천안뿐 아니라 한국과 전 세계를 향해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교회로 발돋움 하였고 성장하였다.


교회가 시작할 당시의 상황과 그 교회의 구성원과 목회자의 목회방향은 그 교회의 특성을 형성해 준다고 본다. 특히 목회자의 목회방향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실 천안갈릴리교회의 역사가 바로 그렇다.
1976년 1월에 시작한 천안갈릴리교회는 그 해 3월에 이창준 전도사가 부임하였기 때문에 갈릴리교회의 역사는 이창준 전도사의 목회방향과 함께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섭리 가운데 이창준 전도사를 통해 열매를 거두어 가는 것이다.

a)교회의 시작과 1차 성전 건축
1975년 겨울에 은혜를 사모하고, 교파와 교단의 정치적 싸움을 배제하려는 몇 사람들(김순오, 장선매, 변순희 등)이, 가정집에 모여 기도회를 시작한 후, 1976년 초에 천안시 봉명동 54번지에 건물 30평(블럭과 슬레이트)을 짓고, 허광재 목사(3개월 후 뉴욕장로교회로 이임)가 부임하였다.
그 후 1976년 3월 21일에 부임한 (당시 모인 20여명) 이창준 전도사는 1차 성전을 완공하는 한편 (30여평 교회에 10평 사택), 그 해 9월에 기독교 대한 감리회 천안북지방 천안교회로 등록하였다.
당시 교회가 위치한 봉명동 지역은 천안역 뒤쪽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인데다가, 공장지대여서 생활의 안정을 이루지 못한 젊은이들이 운집한 곳이었다.
이창준 전도사의 관심은, 집안 형편 때문에 배워야 할 때 배우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는 이들을 위하여 1977년부터 야간고등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해 10여년 동안 교회에서 동거동락하는 동안, 100여명의 검정고시 합격자를 배출하였고, 이들을 향한 복음의 열정은 더욱 불타 오르며, 교회에 모여드는 젊은이들의 수가 점점 늘어가게 되었다.

b)제 2차 성전을 건축하고 이전
1980년 3월에 이창준 전도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 남부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그러는 동안 그의 열정은 몸의 쇠약을 가져왔고, 그 때문에 겪는 고통이 심각하였으나,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치료를 받게 되었고,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다하게 된다. 그의 목회가 장차 복음선포의 주역이 될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집중되어 가면서, 48속의 청년속회(220명이 속회참석)로 성장하였고, 그들이 참석하는 낮 집회는 500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부득이 교회건축의 필요성을 느껴 천안 봉명동 48-38번지에, 120평의 제2차 성전을 건축하고 1981년 8월 20일에 이전하면서, 천안교회는 부흥으로 더욱 크게 부흥 되어 갔다.


1990년대를 맞아, 천안갈릴리교회는 성령이 함께 하심을 외치는 증언자들이 넘치는 신령한 교회로, 이름이 높았다. 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의 열정이 높아지고,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며 교회 인근지역이 개발의 붐이 시작되자 이창준 목사는 봉명동 시대를 마감하고 성정동으로 이전할 계획을 갖게 된다.

a)제 3차 성전을 건축, 천안갈릴리교회로 개칭
목회자가 평생 목회하면서 한 교회도 건축하여 봉헌하지 못하고 목회를 마치는 사람이 많은데, 이창준 목사는 15년 동안에 교인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3차례 성전을 건축해야 하는 목회자가 되었다.
1990년 3월에는 천안시 봉명동 726-10번지에 120평의 대지를 새로 매입했다. 그 해 9월에 연건평 500평의 제 3차 성전을 차공해, 8개월 만인 1991년 6월에 완공하고 이전하면서, 교회의 이름을 천안갈릴리교회로 개명했다.

b)해외선교에 관심 두어 선교의 문 넓혀
이창준 목사는 목회하는 동안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기 위해 일한다는 신앙의 확신을 잊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그는 성장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한국 교회가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을 직시한다. 따라서,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선교의 비젼을 갖게 해주지 못한다면, 한국 교회의 미래가 없고 세계를 향한 복음선포의 주역이 될 수 없다고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어린이와 젊은이들을 일꾼으로 양육해 배출하기로 결심하고, 해외선교의 비전을 심고자 해외 선교훈련을 실시하게 된다.
그가 계획한 젊은이(교회학교)들의 해외 선교훈련은 어린이들만의 프로그램은 아니다. 이 훈련을 위해 참석하는 학생들 부모는 물론, 교사, 그리고 교회 임원들의 관심과 기도에 힘입어 이를 진행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으므로, 이 비전은 온 교회 교인들이 동참하는 프로그램으로, 또 교회의 사명을 수행하는 선교로 이끈 것이다(이 계획은 다음에서 별도로 취급하였음).


2000년대를 맞는 천안갈릴리교회의 특징은 (1)신령한 교회 (2)선교하는 교회 (3)그리스도를 닮는 교회 (4)사명자를 일으키는 교회라고 요약할 수 있다.
신령한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찬송하고, 기도하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신앙고백과 간증을 하는 곳, 그리고 내게도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확신하며 외치는 증언자 등이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그리스도 예수를 닮는 교회는, 신앙의 주제가 첫째, 예수를 믿는 것. 둘째, 예수 그리스도가 살았던 삶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인데, 갈릴리교회가 여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사명자를 일으키는 교회는,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한 세대를 귀하게 쓰임 받는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는 사명자를 일으키는 교회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a)제 4차 새 성전 건축
천안갈릴리교회가 제 3차 성전을 건축하고 이전한 지 8년이 되는 1998년에, 교인들의 수가 날로 많아져 교회를 건축해야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담임목사인 이창준 목사는 이제 천안을 기점으로 이 세대의 요청에 따라 새로운 목회의 장을 펼칠 수 있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선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적은 돈으로 자유롭게 교회를 사용할 공간을 가진 교회를 건축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다.
그는 천안시 쌍용동 218번지에 대지 2,500평을 매입하고 연건평 1,200평의 제 4차 새성전 건축에 들어갔다.
이를 진행하면서 이창준 목사는 새성전 건축에 대한 계획을 교인들에게 선포하지 않았다. 여러차례 성전 건축을 했고, 광대한 공간을 확보하고 건축을 계획한데 대한, 성도들의 부담을 감안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도들에게 교회건축에 대한 헌금도 부탁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뜻에 긍정적인 사람들 몇 명으로 건축위원회를 구성하고, 책임있게 새 성전을 완성하여 이전할 때까지 성도들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 목회자의 계획대로 일이 잘 진행되었고, 드디어, 1998년 6월 28일에 새 성전으로 교회를 이전하고 입당예배를 드렸다.
새 성전에 이사한 후, 전 교인들은 성전을 위해 정성을 드려 헌금을 했는데, 풍성한 은혜가 가득했다고 한다.

b)내일을 향한 천안갈릴리교회

이창준 목사의 목회 방향처럼, 천안갈릴리교회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정성 다해 예배를 드리면, 개인이나 민족이 복을 받고 승리했다는 역사의 비밀을 가르치는 교회로 성장하였다. 또한, 자라나는 젊은이들에게 선교의 비전을 심는 훈련에 총력을 다하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어른 한 명을 전도하여 하나님의 일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나, 어린이에 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기간이나 일꾼을 쓰임 받는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다.
어린이 한 명을 전도하여 잘 양육하면, 평생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와 국가와 세계를 위하여 일생동안 하나님께 온전히 쓰임 받게 되기에, 천안갈릴리교회는 어린이 선교훈련에 많은 기도와 더 깊은 관심과 집중력을 투자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천안갈릴리 교회의 내일을 향한 목회는, 교회 모든 임원들이 교사가 되게 하여, 선교의 일꾼들인 어린이를 교회로 이끄는데 열정을 바치고 있다. 그들이 사명감을 지녀 복음 선포의 증언자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창준 목사는 1997년 2월 23일 주일 설교에서, (아시아가 나아갈 길) 내일을 향한 천안갈릴리교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자! 눈을 들자. 저 땅을 보자. 아시아는 한국인들에게 주어진다
주님 오실 때까지 이 일을 하자. 열렬히 전하자

그는 이 일을 먼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전체를 축복하신다고 확신하고 있다.


his_1.jpg 많은 사람들이 찬송하고, 기도하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신앙고백과간증을 하는곳, 그리고 내게도
성령이 함께 하신다고 확신하며 외치는 증언자들이 있는 교회이다.
his_2.jpg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복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교회이며, 온 성도들의 삶의 현장이 선교터전이 되도록 복음으로 무장시키고 있는 교회이다.
       
his_3.jpg 신앙의 주제는 첫째, 예수를 믿는것이다.둘째,예수그리스도가 살았던 삶과 같은 삶을 사는것이다.
우리 천안갈릴리교회는 여기에 초점을 맞춘다.
his_4.jpg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한세대를 귀하게 쓰임받는 영향력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무장시키고 훈련시키는 사명자를 일으키는 교회이다.
       
his_5.jpg 예수님처럼 낮아지고 섬기며 주님의 말씀과 사랑을 전하기에 힘쓰는 교회, 사랑과 은혜를 나누며 이땅에 행복의 동산을 이루는 교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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